투명인간의 투쟁영화 영화 속 책 |

 

도둑질은 나쁜 행위지만 책을 훔치는 것에 대해서는 특히 관대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사람들은 지식을 쌓고, 생각하고, 그 결과물을 다시 책의 형태로 후세에 전한다. 그래서 모든 정보를 저장하고 제공하는 책은 소유보다는 공유의 개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사상을 통제하고 다양성을 말살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책을 금지하곤 한다. 주사쿠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책도둑>은 아돌프 히틀러의 공포정치 아래서 책을 놓지 않고 생각을 사수해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내용이다.

마커스 주삭이 2005년에 펴낸 소설 ‘책도둑’과 이를 영화화한 동명의 작품 영화는 2014년에 개봉했다.

책을 위로하는 소녀 리젤(소피 네리스)은 한스(제프리 러시)와 로사(에밀리 왓슨) 부부에게 입양됐다. 원래 동생도 함께 입양할 예정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기차 안에서 추위와 허기를 견디지 못해 동생이 목숨을 잃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몰두하느라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나치 정권하에서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죄 없는 사람들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 가족의 수를 줄여야 했고,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입양을 해야 했다.
로사는 두 사람의 입양으로 지원금을 받아 최소한의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됐다며 리젤에게 화를 낸다. 로사는 원래 나쁜 사람이 아니다. 전쟁 중에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자신도 사이에 끈기 있는 상태가 되었다. 곱지 않은 새엄마와 낯선 환경에서 리젤에게 의지한 것은 책이었다. 글을 배우고 읽을 수만 있다면 어떤 책이든 상관없다.
나치 이념을 옹호하는 책 이외에 출판과 유통이 금지된 상황에서 리젤이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의 아내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리젤은 세탁한 침대보를 건네주는 어머니를 대신해 시장 저택을 방문했고, 리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잃은 시장 아내의 눈에 띄어 서재로 들어갈 기회를 얻었다. 틈만 나면 이 서재를 찾아 온갖 책을 읽다가 경계심이 강한 시장에게 출입이 금지된 리젤은 이후 저택에 몰래 들어가 책을 훔쳐(?) 읽고 돌려주기를 반복했다.
그중 한 권이 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이었다. 리젤이 책을 가져오자 아버지 한스도 자주 읽었는데 그들이 함께 읽은 <투명인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 낯선 남자는 2월의 어느 겨울날 아침 일찍 살을 에이는 바람과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뚫고 도착했다.” 마침 리젤과 한스가 『투명인간』을 읽었을 때는 1938년 2월의 겨울이었고, 창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정체를 숨긴 한 사내가 리ー젤의 집을 비밀리에 방문한다.

01 나치의 만행을 피해 리젤의 집에 숨어사는 유대인 청년 맥스는 리젤에게 읽고 쓰는 것의 중요성을 일러준다.

투명해져야 할 사내 이름은 맥스(벤 슈네처)다. 아리안족을 주축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면 다양성을 탄압하고 학살한 나치의 만행을 피해 유대인 청년 막스는 숨어살아야 할 상황이다. 아리안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존재를 지워야 하지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던 투명인간의 운명. 책도둑을 쓴 작가 마커스 쥬삭은 SF소설 투명인간에서 몸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소수자이자 타자로 전락한 주인공을 향해 사람들이 어떻게 혐오를 드러내고 그것이 악과 결부돼 공포심을 조장하는지 주목한다.
히틀러가 나치 친위대를 앞세워 독일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을 때까지 아리안족과 유대인은 리젤과 막스는 독일 내 대부분의 사람이 가까운 이웃이거나 함께 있어도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딱딱하다고 생각했던 서로의 신뢰가 혐오와 차별로 순식간에 무너지자 어떤 이들은 살겠다고 이웃을 고발했고, 한스와 로사 부부처럼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를 다하려 했던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나치로부터 쫓기는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삶과 죽음이 단 한 번의 선택에서 찰나의 타이밍에 결과를 달리하듯 인간의 이중성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예측 불가능한 속마음을 드러낸다. 허버트 조지 웰스는 <투명인간> 그리핀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춥고 더러운 날씨와 떠들썩한 문명사회의 도시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리석은 일인가를 더 절실히 느꼈다.난 몸을 완전히 감싼 수수께끼가 되어버렸어!
<투명인간> 그리핀이 과학적 상상력으로 투명인간이 되는 개가를 올린 반대편에서 그와 마주한 사람들은 다른 존재라는 이유로 피하거나 총을 겨누어 사회적 혼란을 자초했다. 거대악의 형성은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1963)에서 제시한 악의 평범성, 그래서 자의적으로 협조하거나 침묵으로 불의에 동조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비로소.
책도둑에서 투명인간 같은 존재는 맥스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다. 그가 리젤의 집에 숨어살 수밖에 없듯이 히틀러의 독재를 가능케 한 사람들까지 포함한다. 평소 일상에 묻혀 투명인간인 양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악에 시동을 걸 때 평범함의 가면을 벗고 검은 속마음을 끄집어내는 이들의 존재. 투명인간의 허버트 조지웰스가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해부한다면 책도둑의 원작자 마커스 쥬삭은 인간의 양면성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영화 ‘책도둑’에서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책허버트 조지 웰스의 ‘투명인간’과 히틀러가 쓴 ‘우리 투쟁’

역사를 새로 쓰는 이 <책도둑>의 화자는 독특하게도 죽음의 신이다. 죽음의 신은 자신에 대해 “죽은 자의 영혼을 영원한 컨베이어벨트에 실어 나르는 것이 죽음의 신인 ‘나’의 주 임무”라고 소개한다. 그러면서 나는 직업상 인간들의 최고와 최악을 목격한다. 나는 그들의 추함과 아름다움을 본다. 그리고 어떻게 같은 것인지 궁금하다고 직업적인 의문을 드러냈다.
삶과 죽음이 원으로 맞물려 한 인간의 일생을 이루듯 사람은 삶의 미추를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예측불허의 형태로 품은 존재다. 그래서 사람이 써서 완성된 책은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나쁜 길로 인도하기도 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나치에 쫓겨 그들을 증오하면서도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을 가슴에 두고 있는 맥스의 속마음은 바로 인간생활의 양면성을 받아들여야 이해가 된다.
나의 투쟁은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인 1923년 뮌헨 폭동 미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중 집필한 책이다. 1000쪽이 훨씬 넘는 이 책에서 히틀러는 인종차별과 공포정치가 주를 이룬 아리안족의 전체주의 지배시스템을 만들어 전 세계를 자기 손아귀에 두려는 계획을 상세히 기술했다. 그에게 희생당한 맥스가 <나의 투쟁>을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던 것은 히틀러에 맞선 맥스만의 ‘나의 투쟁’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더 많은 책을 접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단어를 익히고 글 읽는 법을 리젤에게 맥스는 글쓰기의 중요성을 얘기한다. 우리 종교에서는 나뭇잎과 새 같은 세상이 모두 살아 있기 때문에 생명을 의미하는 단어를 품는다고 배운다. 그게 찰흙과 우리의 유일한 차이다. 단어는 생명이다 그 백지를 네가 익혀 배운 단어로 채워봐맥스에게 생명을 파괴하고 책을 금지시킨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진흙 덩어리다. 그들이 사용한 단어나 문장은 생명이 아니라 세상을 파괴하는 죽음을 안고 있다. 히틀러와 나치는 죽음이 남과 소수자의 삶을 마감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죽음은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맥스는 들고 있던 나의 투쟁의 모든 페이지를 하얀 페인트로 지우고 백지된 책을 리젤에게 건넨다. 그럼으로써 리젤이 그 위에 쓰는 이야기는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채우는 새로운 역사가 된다.
제목이 뜻하는 ‘책도둑’은 그 속에 담긴 내용과 사상의 도둑질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책을 금지한 것은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받아들이거나 생각하는 것을 막으려는 사고의 통제였다. 그는 엄격한 감시 속에서도 책을 훔쳐 단어를 외우고 글을 써서 나치의 어두운 역사를 통과해 새 역사의 도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등은 리젤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기억이란 영혼의 반영이다. 기억을 잃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기억하기 위해 우리는 책을 쓰기도 하고 책을 만들기도 한다.허남웅 영화평론가 딴지일보와 FILM 2.0에서 영화기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프로그래머 업무를 거쳐 현재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유튜브 섹씨네, SBS 라디오 허지은 쇼, KBS 라디오 김태훈의 프리웨이에 출연하고 있으며 네이버 너와 함께, 채널 예스 영화경 등의 영화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문허남웅 사진 20세기 폭스코리아